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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놀이/울릉 일기

울릉놀이 #127 : 괭이 갈매기 새끼의 자연도태

by 배스노리 2022. 12. 24.

2021.11.04

 

사촌 놀러 오고, 집에 혼자 나두고 낚시 가기는 쪼매 거시기해 며칠 낚시를 못했더니 손이 근질근질 궁디가 들썩들썩. 금단현상이 온다. ㅋ 잠깐 바람도 쐴 겸, 손맛이 일품인 집 근처 숭어 짬낚 고고.

 

 

여윽시. 쭉쭉 나가는 드랙과 함께, 휘청이며 곡예를 부려주는 로드의 휨새는 포기할 수 없는 쾌감이 있지. 그렇게 간단하게 손맛을 보며 놀고 있는데.. 바로 앞 물 위에서 계속 왔다리갔다리 하며 첨벙 거리는 갈매기 새끼가 참으로 송신타. (대충 어수선해서 정신 사납다는 갱상도 사투리)

 

근데 가만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파닥이며 날려고 하는건지.. 파닥이며 노질하는 건지.. 파닥파닥 날갯짓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어정쩡하니 이도 저도 아니게 휘청이며 떠다니는 걸로 보여진다. 계속 보고 있으니 이상한 게 확실한 듯. 물 밖으로 나오고 싶은데 날지를 못해서 물 위에서 힘만 빼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것도 정신산만 하고.. 뭔가 불편해 보여 짠하기도 하고. 빠야랑 뜰채로 물 밖에 올려줘 보자 했음.

 

새끼 괭이갈매기

이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겨울쯤 되면 자연도태되어 죽은 새끼 괭이갈매기들 사체가 여기저기 생긴다고. 

 

 

물 위로 올려주니 그동안 파닥인다고 기 다 빠졌는가 도망가지도 않고 얌전하게 앉아서 멍 때린다.

 

 

한참을 멍만 때리길래 배 고파서 힘 없어서 그런가 싶어, 후딱 지그헤드에 웜 하나 장착해서 작은 개뽈락 하나를 잡아내어 줬으나.. 쳐다도 안봄. 싱싱한 거 어필한다고 살아있는 채로 준 건데.. 팔딱이는 물고기가 부담스러운가 싶어 빠야가 먹기 좋게 썰었다. 

 

 

두세 개 부리로 쪼긴 쪼는데.. 먹지는 않는다. 

 

먹고 있는 호떡도 뺏어가고. 옥상에서 등갈비 꾸워 먹으면 통째로 한 개 들고 튀고. 어시장 할매들 옆에 진 치고 앉아서 내장 하나 줄 때까지 째려보고. 그 정도는 해야 울릉도 괭이 갈매긴데... 요눔시키는.. 아직 울릉도 괭아치 되려면 한참 멀었나 보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가.. 뒤뚱뒤뚱 걷기 시작하는 이눔시키. 도로 쪽으로 나가면 위험할 것 같아 근처에 있던 평상 밑으로 몰아봤다. 날개가 흠뻑 젖은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되는데.. 원래 갈매기 날개가 물에 젖는 건가? 확실히 못 먹어서인지, 체력이 고갈된 건지..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비틀비틀 터벅터벅 거린다. 

 

왜 그리 짠하게 ㅜㅜㅜ 회 줘도 안먹고 ㅜㅜ 

 

이번엔 우리가 도우려 하긴 했다만.. 이게 도움이 되었을진 알 수 없다. 여긴 더 치열한 약육강식의 동네 고양이들이 길거리 파이트를 자주 벌이는 곳이라.. 발 빠르게 도망치거나.. 날 수 있게 되느냐, 안되느냐에 점마의 운명이 달렸겠지.. 

 

며칠 뒤 저동 만남의 쉼터 앞에서도 힘 빠진 괭이갈매기 새끼 한 마리가 차도에 앉아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어판장 앞으로 옮겼었다. 

 

울릉도에 널리고 널렸으나, 천연기념물 제336호라는 괭이 갈매기. 초여름쯤 태어나 가을이 되면 부모에게 나는 법을 익힌 갈매기들이 바다 생활을 시작한다던데.. 도태된 새끼들은 부모가 버리는 건가.. 괭이갈매기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산다고 했다. 울릉도 들어와 느낀 최고의 진상들이지만.. 그런 점은 참 기특하고 부러워서 좋았는데.. 새끼에겐 적용이 안되는 건가...? 하긴. 매년 낳는 새끼들을 반평생이라도 다 책임 지진 못할 듯. 

 

갑자기 낙오에서 운과 과실의 비율이 궁금해진다. 낙오로 인한 도태에서 마감되는 생은.. 모든 것이 그만의 잘못인걸까. 사실 별 문제없는 그저 당연한 생태계 원리일 뿐인데 내가 과하게 감정과 생각을 넣는 건지도 모르겠다. 초라해 보임은 내 자격지심의 문제인가. 

 

치열함에서 멀어지려 울릉낙원에 입성하였지만 이 또한 쉼이라는 여유의 한 과정일지, 단순한 도피일지는 나중의 나로 결정되겠지.. 결과론만 마냥 챙기기도,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결국 인생은 불만의 시간과 만족의 시간에서 어떤 시간을 더 채웠냐의 행복감이, 인생마감 타이밍에 결정적 기준이라 전제는 큰 영향 없다가 내 소신이지만.. 뭔 개소리야. ㅋㅋㅋㅋ 

 

쨌든. 점마가 다시 힘차게 날아서, 건강하고 밝게 울릉의 창공과 바다를 누비다가 생을 마감하길 바라고, 바란다의 이야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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