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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노리의/일기장

소망이

by 배스노리 2019. 3. 17.





수년전 여름.


집으로 가는 길에 귀여운 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다. 그 작고 꼬물거리는 것이 마치 자기가 '개'인양 꼬리로 내 다리를 감으며 빙글빙글 돌고는, 그 똘망한 눈망울로 날 유혹했다. 


"언니 따라 갈래?" 그 아인 마치 알아들은 듯 날 따라 우리집으로 왔다.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질 않았던 우리 부모님도 그 아이의 애교를 보곤 한눈에 반해 이름까지 지어줬다. 


소망이. 우리 소망이.


막둥이의 등장으로 우리집은 치열한 쟁탈전이 항상 일어났다. 소망이 밥을 서로 주겠다고. 나도 귀찮아하는 우리 마마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소망이에게 푹 빠져 귀가 때 마다 소망아 소망아 어찌나 애타게 찾으시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우리 소망인. 참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그렇게 한 이주쯤 지났을까. 소망이가 아닌, 우리가 소망이에게 어느새 길들여져 있을 무렵. 그 녀석이 갑자기 사려져버렸다. 소망앓이에 빠져 허덕이게 만든 그런 그 녀석이. 정말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몇일을 헤매며 찾으러 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애가 타고 속이 뒤집어지는데. 도무지 이 녀석이 어디에 있는건지. 혹시. 혹시. 혹시. 하는 갖은 생각들이 날 괴롭힐 때 친구들이 말했다. 


"고양이는 귀소 본능이란게 있어서 곧 돌아올거다"


그래? 정말? 그런게 있나? 그래? 진짜?


하지만 수일이 지나도 소망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릴 수 있을 때 깨달았다. 아. 그 귀소본능의 본거지가 내가 아니었구나. 착각했구나. 내가 너의 본 종착지 인지 알았는데. 사실 내가.. 너의 여행 중 하나의 추억이었구나.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왜 그렇게 섭섭하고 서러웠는지 모른다. 


그럼 난? 진심으로 들인 내 정성은? 휘말렸던 내 감정은? 다.. 내가 진짜가 아니었다면 그럼 나는? 내 감정까지 진짜가 아닌게 되는거야? 


내 모든 노력과 기억과 감정이 다 무너지는 시간. 하지만 잔인하게도 인정을 해야 내가 더이상 무너지지 않을 시간. 인정하기까지 수없이 무너지고 짖이겨진 내 시간.


넌 내가. 어느날 돌아보면 미소 짓는 기억이겠지만

난 니가.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라면.


내가 돌려 받자고 준 마음은 아니었지만, 상처로 돌아오라고 준 마음은 아니었다. 



한동안 친구들과 술만 먹으면 꼬장을 피웠다. 


나쁜x, 나쁜x. 나한테 왜 그러냐고.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지가 꼬실 땐 언제고 어떻게 내한테 이러냐고. 가만있는 내한테 지가 나 좋다고 막 앵겨붙어 놓고. 지가 꼬셔놓고.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고. 진짜 나쁜x. 진짜진짜 모옷땐x.



모르는 친구가 점마 왜 저러냐고 물으면. 저거집 고양이 집 나갔단다는 한마디로 정리되는 서글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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