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이해를 받으려면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 이해는 내가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어야 하므로, 상대가 이해 할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해는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해가 섞이지 않도록 맞춤 눈높이로 쉽게 설명을 해서 상대가 진정으로 납득이 되어야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옳다와 타인이 생각하는 옳다는 분명 다를 수 있다. 그저 나는 이런것을 옳다라고 생각하니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런것임을 인식을 시키려는 것이지 내 옳다가 진정 옳다라는 뜻이 아니다. 너의 옳다도 내 옳다와 같아져라란 뜻이 아니라.. 아. 이 사람은 이런것을 옳다라고 생각하는 구나만 알아주면 부딪힐 여지가 줄어들것이기에, 왜곡 없이 내 생각 취향을 읽어주기만을 바랄 뿐 이다. 옳다를 굳이 사전적, 도의적으로 따지면 할말이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옳다는 어차피 개인 취향일 뿐 그냥 그게 다 일 뿐인데.. 뭐가 잘못된건지 항상 난. 내 말이 무조건 다 옳다로 들리나보다. 결국은 내 설명법과 대화법이 틀린거겠지..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들의 문제인가를 생각해봤다. 단어들은 그저 내 생각을 표현하려는 과정중에 사용되는 도구 일뿐. 그 하나하나에 큰 의미는 없었을 것 이다. 받아들임에 있어 무슨말을 전하려고 하는건지의 큰 줄거리에 초점을 줬으면 좋겠는데... 결국은 단어들에서 다 막혀버릴 때도 있다. 이 역시도 내 대화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으리라.
밥상 아무리 맛있게 차려줘봐야 먹고 안먹고는 지 맘이라 했다. 맛없게 차려도 지가 먹고 싶으면 먹고. 아무리 맛있게 차려도 지가 먹기 싫으면 안먹는거니. 그 어떤 말이든 설명이든 중요한건 상대가 듣고자하는 마음이 있어야 들리는 것이고. 이해를 하고자 노력을 하는 것도 이해를 해보고 싶을 때 드는 마음이라 그냥 나 혼자 결론을 내린다. 이젠 통해보려 여차저차 구차하게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는것도 점차 지쳐간다.
나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일이, 상대에겐 기분 나쁜일이 될 때.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상대에겐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 될 때. 그 기준점을 혼자서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 하다. 그래서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통도 인연이 맞아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제는 절실히 와닿고 있다.